능곡

사는 일 - 나태주

쉬리 2022. 2. 22. 13:22

 

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.

 

굽은 길은 굽게 가고

곧은 길은 곧게 가고

 

막판에는 나를 싣고

가리고 되어 있는 차가

제시간 보다

일찍 떠나는 바람에

 

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

두어 시간

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.

 

그러나,

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.

 

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

걸었으므로

 

만나지 못 했을 뻔 했던

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

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

멍석딸기도 만나고,

 

해 저문 개울가

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

물총새,

쪽빛도 보았으므로

 

이제 날 저물려고 한다.

 

길바닥을 떠돌던 바람도

잠잠해졌고

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.

 

오늘도 하루

 

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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